검은 바탕에서 움직이는 빛

나전칠기의 꽃은 물감으로 채색한 꽃과 다른 방식으로 빛납니다. 몸을 조금 옮기면 같은 꽃잎에서 분홍과 초록, 은빛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검은 바탕은 그대로인데 꽃이 바뀌는 듯한 것은 조개껍데기 안쪽의 진주층을 잘라 넣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자개라고 부르는 이 재료는 무늬를 그리는 색이면서 동시에 실제 두께를 가진 조각입니다. 나전은 그 조각을 기물에 장식하는 기법이고, 나전칠기는 칠한 바탕과 자개 장식이 만난 물건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검은 장롱을 떠올리기 쉽지만 크기도 용도도 훨씬 다양합니다. 작은 뚜껑합에서 글쓰기에 쓰는 상자, 옷을 보관하는 큰 함까지 이어집니다.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조개껍데기를 칠기에 넣었고, 한국의 나전도 그 교류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한국만이 처음 발명했다는 이야기보다, 특정 시대의 장인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잘라 어떤 물건에 배열했는지를 보면 차이가 또렷해집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세 점은 그 변화를 서로 다른 크기의 표면으로 보여줍니다.

껍데기와 나무 사이에 필요한 바탕

자개부터 붙이면 될 것 같지만 작업은 상자의 구조에서 시작합니다. 나무를 짜서 몸체와 뚜껑이 맞도록 만드는 일, 그 위에 칠할 바탕을 준비하는 일, 무늬를 놓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틈과 결이 그대로 남은 바탕에 정교한 꽃잎을 붙여도 평평한 면을 얻기 어렵습니다. 칠과 자개의 아름다움은 그 아래 보이지 않는 몸체가 버텨 줄 때 드러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13~14세기 경전함에는 닳은 칠 아래 베가 보입니다. 상자의 바탕은 한 재료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무 몸체 위에 직물이 놓이고 그 위를 칠과 장식이 덮으면, 관람자가 보는 면과 형태를 지지하는 안쪽은 서로 다른 일을 합니다. 꽃무늬를 붙일 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은 장식보다 앞서 이루어집니다.

천연 옻칠도 보통 페인트와는 다릅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칠공예 해설에 따르면 옻나무 수액을 처리해 불순물과 여분의 수분을 줄이고, 얇은 층을 여러 번 올려 적절한 습도의 환경에서 굳힙니다. 수액은 피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작업자에게 재료를 다루는 숙련이 필요합니다. 완성된 검은 면만 보면 한 번에 칠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층을 올리고 다음 작업이 가능한 상태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들어 있습니다.

꽃잎을 오리는 줄음질, 선을 잇는 끊음질

껍데기는 곡면이고 무늬의 바탕은 평면입니다. 그래서 안쪽 진주층을 얇게 갈아 사용 가능한 판으로 준비한 뒤 무늬에 맞게 나눕니다. 어느 부분을 꽃잎으로 삼을지 정하는 순간에는 색과 결, 두께를 함께 봐야 합니다. 굴곡과 균열을 가진 자연 재료에서 같은 모양의 조각을 반복해 얻는 일은 종이 도안만 잘 자르는 것과 다릅니다. 작은 부분이 깨지면 그 한 조각을 다시 마련해야 하고, 이음새의 간격은 전체 무늬의 흐름에도 영향을 줍니다.

대표적인 방법은 줄음질과 끊음질입니다. 줄음질은 자개판에서 꽃과 잎 같은 모양을 오려 붙이는 방식입니다. 가위나 칼, 실톱으로 윤곽을 잘라 하나의 형상을 만듭니다. 끊음질은 자개를 길고 가느다란 상사로 준비하고 이를 필요한 길이로 끊어 이어 붙이는 방식입니다. 꽃잎 한 장을 하나의 판으로 만들 때와, 가는 조각들이 연결되어 테두리나 기하학적 선을 만들 때의 손놀림이 다릅니다. 옛 박물관 설명에는 줄음질이 주름질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두 기법을 단순히 곡선과 직선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짧은 선을 이어 복잡한 표현을 만들 수도 있고, 오려낸 판에 선을 새겨 잎맥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금속선이 결합하면 식물의 줄기를 연결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자개 조각의 모양만 보는 대신 꽃에서 줄기, 줄기에서 다음 꽃으로 시선을 옮기면 한 표면 안에서 재료별 역할이 구분됩니다. 그림처럼 보이는 무늬를 실제 작은 부품들로 조립하는 과정입니다.

칠로 덮고, 자개를 다시 드러내기

자개를 붙인 뒤에는 장식과 주변의 바탕을 하나의 표면으로 마감해야 합니다. 칠층을 쌓고 자개 위를 덮은 부분을 갈아내면, 처음에는 가려졌던 패각이 다시 드러납니다. 이는 한 번 붓칠을 하고 끝내는 일과 다릅니다. 층을 더하는 작업과 필요한 부분을 되드러내는 작업이 연결되어야 빛나는 무늬가 어두운 바탕과 나란히 놓입니다.

너무 거칠게 갈면 얇은 자개나 무늬의 세부를 해칠 수 있고, 높이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빛이 닿는 면이 고르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바탕을 만드는 단계에서 남긴 문제를 맨 마지막 광택만으로 해결하기도 어렵습니다. 완성품에서 손에 닿는 면과 눈에 보이는 무늬는 작업의 서로 다른 부분이 아니라 같은 층을 끝까지 정리한 결과입니다. 자개를 보이게 만들기 위해 한동안 자개를 덮는다는 순서가 이 공정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10센티미터 합에 들어간 고려의 밀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국화무늬 세잎형 뚜껑합은 고려 12세기 무렵의 작품입니다. 길이는 10.2센티미터, 높이는 4.1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사진에서 넓어 보이는 표면이 실제로는 손바닥에 놓을 만한 크기라는 것을 알면 작은 꽃과 테두리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검은 바탕 위에 반복된 국화가 둥근 세잎형 윤곽을 따라 자리하고, 뚜껑과 몸체가 이어지면서 작은 그릇 전체를 하나의 장식으로 만듭니다.

이 작품에는 자개만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미술관은 안료 위의 대모, 곧 거북등껍데기, 그리고 황동선을 함께 기록합니다. 투명한 대모 뒤의 색과 자개의 빛, 금속선이 제공하는 가는 윤곽은 서로 다른 효과입니다. 오늘 이 재료 구성을 설명하는 일은 대모를 새로 사용하자는 권유가 아니라 역사적 물건이 실제로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읽는 일입니다. 작은 꽃을 모두 같은 재료로 본다면 장인이 마련한 차이도 놓치게 됩니다.

미술관은 이런 세잎형 합 여러 개가 큰 상자와 함께 구성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화장품 또는 향을 담았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뚜껑합이라는 형태는 분명하지만 용도에는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흥미는 충분합니다. 한 물건이 세트의 일부였을 수 있다는 생각은 표면 장식뿐 아니라 넣고 꺼내고 배치하는 사용의 풍경까지 넓혀 줍니다.

모란넝쿨무늬 문방함. 조선 15~16세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모란넝쿨무늬 문방함. 조선 15~16세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C0 / Public Domain · 원본 이미지 사용·수정 없음

문방함에서 옷을 담는 함으로

15~16세기 조선의 모란넝쿨무늬 문방함은 높이 9.2센티미터, 길이 36.5센티미터입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종이와 글쓰기 도구를 보관한 상자로 설명합니다. 낮고 넓은 뚜껑에는 꽃과 잎이 여러 방향으로 이어지고, 옆면과 금속 장석까지 함께 상자의 윤곽을 잡습니다. 고려의 손바닥만 한 합과 비교하면 무늬가 펼쳐지는 면적도, 뚜껑을 여는 사람 앞에 놓이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17세기 의복함은 길이가 79.1센티미터로 더 커집니다. 큰 모란꽃과 두툼한 잎, 가장자리의 기하학적 띠가 넓은 면을 채웁니다. 사진에서도 앞선 문방함보다 큼직한 꽃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이 함에는 자개와 대모, 황동선이 쓰였습니다. 같은 모란넝쿨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꽃의 크기와 빈자리, 테두리의 비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 점을 고려의 정교함과 조선의 거칠음이라는 한 줄 평가로 정리하면 실제 물건에서 읽을 내용이 줄어듭니다. 작은 합과 큰 의복함은 같은 거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볼 물건이 아닙니다. 작은 표면에서 미세한 반복으로 리듬을 만드는 것과 큰 가구에서 넝쿨의 덩어리와 테두리로 구성을 잡는 것은 서로 다른 설계입니다. 시대를 판단하기 전에 용도와 크기를 함께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모란넝쿨무늬 의복함. 조선 17세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모란넝쿨무늬 의복함. 조선 17세기,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C0 / Public Domain · 원본 이미지 사용·수정 없음

장인은 한 사람의 이름보다 긴 연결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나전장 항목은 전통 제작이 나무 몸체를 만드는 백골장, 칠을 담당하는 칠장, 자개 장식을 하는 나전장의 분업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완성품을 한 장인의 손길이라고만 부르면 그 몸체와 바탕을 맡은 노동이 지워집니다. 한 공정을 안다고 전체 공정의 품질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므로, 여러 기술이 연결되는 작업장의 구조가 중요했습니다.

통영에서는 임진왜란 뒤 통제영의 12공방이 공예품을 제작했고, 전복껍데기를 얻기 쉬운 지역 조건도 나전 생산과 연결되었습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원료와 관청의 주문, 몸체를 짜는 기술이 한 지역에 모인 것입니다. 근대 이후에는 대용칠과 수입 자개, 서양식 가구의 확산 등으로 재료와 수요가 달라졌습니다. 칠장과 나전장의 일이 겹치는 변화도 나타났습니다.

1966년의 무형유산 지정과 김봉룡을 비롯한 장인의 전승은 이 기술을 이어 가는 제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존할 것은 완성품의 무늬만이 아닙니다. 얇은 자개를 준비하고 깨지지 않게 다루는 판단, 선을 이어 붙이는 속도와 정확도, 표면을 다듬는 감각은 사진이나 도안만 남겨서는 같은 방식으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전승에는 실제 재료를 다룰 작업 시간과 다음 작업자가 배울 자리도 필요합니다.

1997년의 상자에는 두부도 들어갔다

김설의 1997년 작품 《여러 각을 가진 상자》의 재료 목록에는 옻칠, 삼베, 메추리알 껍질, 두부, 전복 껍질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패각처럼 빛을 반사하는 재료와 불투명한 껍질을 함께 쓴다는 선택부터 재료의 역할이 하나가 아님을 드러냅니다. 목재와 자개 두 가지로만 나전을 설명하면 이런 재료의 확장을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이 변화는 오래된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장식을 붙였다는 이야기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칠의 층과 재료의 표면을 이해한 작업자가 그 관계를 다른 형태로 바꾼 것입니다. 과거의 상자에서는 옷이나 종이를 담는 기능이 무늬의 규모를 정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비대칭 면과 질감의 실험이 상자의 성격을 이끕니다.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 이어지는 동안 결과물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복의 형태와 입는 문화가 옷의 쓰임과 제작을 함께 읽게 한다면, 한국의 집은 이런 함이 놓였을 생활 공간을 다른 크기로 보여줍니다. 나전칠기의 매력은 화려한 겉모습에만 있지 않습니다. 작은 껍데기를 얇게 갈고, 보이지 않는 바탕을 만들고, 덮은 칠을 다시 다듬어 빛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일에 있습니다. 오늘의 제작과 전승도 그 일을 이어 가는 것으로 볼 때, 오래된 장식이 아니라 계속 선택하고 만들어 내는 공예가 됩니다.

THE PIECE TO KEEP

공예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바탕과 재료를 다듬는 실제 작업에서 이어집니다.

자료와 읽는 기준

동아시아 칠공예의 재료와 제작 ↗2004-10-01모란넝쿨무늬 경전함과 제작 공정 ↗나전장과 두 절단 기법·전승 ↗2026-08-12고려 국화무늬 세잎형 뚜껑합 ↗조선 모란넝쿨무늬 문방함 ↗조선 모란넝쿨무늬 의복함 ↗김설의 여러 각이 있는 상자 ↗

국화무늬 세잎형 뚜껑합. 고려 12세기 무렵,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CC0 / Public Domain · 원본 이미지 사용·수정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