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니아에서는 한 권의 만화가 먼저였습니다

2019년 6월, 이탈리아 카타니아의 에트나 코믹스에서 《킬링 스토킹》 작가 쿠기가 책을 산 독자에게 사인을 했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계간지 코리아나가 소개한 장면입니다. 휴대전화로 읽던 만화가 책이 되고, 작가와 독자가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름은 ‘한국’보다 쿠기입니다. 서점에서 한 권을 고르는 데에는 그림의 선, 이야기의 속도, 장르 취향, 표지와 번역이 함께 작용합니다. 사인을 받을 때에는 작가의 이름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국가 이름으로 묶여 있던 관심이 한 작품과 한 사람을 향한 기억으로 바뀝니다. 좋아했던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은 화면에서 작품을 읽을 때와 다른 관계를 만듭니다.

화면과 종이책은 손에 남는 감각도 다릅니다. 세로로 읽을 때에는 아래에 숨은 그림이 손가락을 움직여야 나타납니다. 책에서는 양쪽 페이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이전 장면으로 돌아가는 손동작이 빨라집니다. 화면에서 멈춘 순간을 다시 찾으려면 위로 스크롤하지만 책에서는 손가락이나 책갈피를 사이에 끼울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이야기를 인쇄물로 소장하는 선택에는 이런 차이가 들어 있습니다. 수출 지도 속에서 흐릿했던 독자가 책을 들고 작가를 만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미생을 읽는 일본의 시선

윤태호의 《미생》을 소개하는 일본 미디어예술제 기록에는 한국의 2014년 드라마화와 일본의 2016년 드라마 《HOPE》, 번역가 후루카와 아야코와 김승복의 이름이 나옵니다. 제20회 만화 부문 우수상 심사평에서 만화가 이누키 가나코는 이야기의 구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기에는 만화가가 다른 만화의 작동 방식을 읽는 시선이 있습니다.

작품의 출발점은 프로 바둑기사가 되려던 장그래가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바둑에서는 한 수를 두고 나면 상대의 응수를 기다려야 합니다. 돌 하나를 놓으면 주변을 다룰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는 동시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당장의 손해를 받아들여 다음 수의 공간을 만들 수 있고, 한 군데를 지키느라 다른 곳의 변화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의 리듬을 아는 독자에게 회사에 들어간 인물의 선택은 다른 긴장을 줍니다. 바둑을 모르더라도 낯선 조직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출발점은 읽을 수 있습니다.

직장 이야기가 국경을 건널 때 달라지는 부분도 구체적입니다. 낯선 직급은 번역을 거쳐 조직 안의 높낮이를 짐작할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짧은 대답은 예의를 갖춘 것인지, 말을 아끼는 것인지, 상대에게 떠밀린 것인지 주변 장면과 함께 읽힙니다. 호칭을 반복하는 대화와 호칭을 생략한 대화는 인물 사이의 거리를 다르게 들려줍니다. 회사의 세부를 모두 자기 직장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독자는 결정이나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을 따라갑니다. 무엇을 읽고 좋다고 말했는지가 ‘한국의 회사 문화가 전해졌다’는 선언보다 재미있습니다.

한강의 독자는 자기 경험을 꺼냈습니다

책의 출신 국가를 알고 읽기 시작해도, 어느 문장에서 오래 머무는지는 독자마다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특정 소설의 줄거리와 무관한 읽기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한 사람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는 문장이 있다면, 어떤 독자는 누가 말을 끊었는지 먼저 살피고 다른 독자는 그 뒤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같은 문장에 도착했어도 앞에서 기억한 대화와 관계가 서로 다른 물음을 만듭니다. 그 차이는 한 나라의 독자 전체를 하나의 반응으로 묶기보다 책과 각자의 경험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같은 문장 앞에서도 독자가 멈추는 지점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식탁을 둘러싼 관계에 마음이 가고, 다른 사람은 자기 몸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오래 붙듭니다.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도 독자의 집중은 그렇게 갈라집니다. 어떤 말을 했는지 귀를 기울이는 독자와, 말을 하지 못한 사람의 침묵을 보는 독자가 같은 책에서 다른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덮은 뒤 남는 것이 사건의 순서일 수도 있고, 짧게 지나간 문장의 감각일 수도 있습니다.

번역된 책에는 두 사람 이상의 일이 들어 있습니다. 원작자가 문장을 만들고 번역가는 다른 언어에서 그 호흡을 다시 세웁니다. 생략된 주어를 어디에서 드러낼지, 인물 사이의 거리를 어떤 호칭으로 놓을지에 따라 읽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문장을 길게 이어 붙이면 생각이 계속되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끊어 놓으면 말하기 어려운 순간의 멈춤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독자는 번역가가 정리한 호흡을 자기 언어로 읽습니다. 한국어판과 영어판에서 같은 감각을 갖지는 않아도 각자의 언어로 한 작품을 깊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책’이라는 소개가 관심을 만들고 나면 독서를 붙잡는 것은 결국 그 책의 문장입니다.

스톡홀름 기자회견의 한강
2024년 12월 6일, 스톡홀름 노벨상 주간 기자회견의 한강. 사진 John Sears.John Sears · CC BY-SA 4.0 · 크기 조정·WebP 형식으로 변환; 변경 이미지에도 원래 CC BY-SA 라이선스 적용

런던에서는 화면 속 공간에 몸이 들어갔습니다

런던 V&A 사우스 켄싱턴의 《Hallyu! The Korean Wave》는 2022년 9월 24일부터 2023년 6월 25일까지 열렸습니다. 박물관의 소개에는 《기생충》 욕실 재현과 싸이의 《That That》 참여형 춤이 나옵니다. 같은 관심이 공간을 보는 일과 몸을 움직이는 일로 갈라졌습니다.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보여 주는 크기와 순서가 시선을 이끕니다. 가까운 물건을 먼저 보고 주변 공간을 보기도 하고, 문 바깥을 남겨 두어 보이지 않는 곳을 의식하게 하기도 합니다. 재현된 세트를 전시장에 놓으면 관객에게 다른 시간이 생깁니다. 다음 컷으로 넘어가도 전시 관객은 물건 앞에 더 머무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의 동선을 따라간 기억이 공간의 높이와 거리와 배치를 보는 경험으로 바뀝니다. 촬영 화면의 일부였던 벽과 문은 사람이 서서 크기를 가늠하는 물건이 됩니다.

춤에서는 변화가 직접적입니다. 영상으로 볼 때에는 잘 맞는 군무의 결과를 봅니다. 따라 할 때에는 무릎을 굽히는 순간과 팔을 올리는 순간을 자기 몸에서 나누어 봅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다음 동작을 준비하지 못하면 박자가 밀립니다. 한 동작을 크게 하려고 힘을 주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완벽하게 따라 하지 못해도 매끄러운 공연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동작의 수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전시는 팬에게만 필요한 정답을 맞히는 곳보다 익숙한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69.7퍼센트가 담는 것과 담지 못하는 것

2026년 3월 발표된 해외한류실태조사는 2025년 11월 13일부터 12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습니다. 대상은 한국 콘텐츠 경험이 있는 30개 국가·지역의 15~59세 2만 7,400명이었습니다. 전체 호감도는 69.7퍼센트, 부정 인식에 동의한 응답은 별도 문항에서 37.5퍼센트였습니다. 두 수치는 서로의 나머지가 아닙니다.

한 작품을 재미있게 보고도 판매 방식에는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곡을 반복해서 듣는 행동과 새 상품을 살지 결정하는 행동은 같은 선택이 아닙니다. 음원은 이미 들을 수 있는데 배송료가 붙는 물건은 이번 달 예산에서 빼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팬’이라는 이름 안에는 듣기, 보기, 구매, 보류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본편을 보고 다음 달에 책을 사는 사람도, 상품은 갖지 않지만 새 작품을 꼬박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호감도는 여러 응답을 묶지만 그 사이의 생활을 대신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앞의 사례가 중요합니다. 카타니아에서는 책과 사인, 일본의 심사평에서는 구성, 한강의 인터뷰에서는 독자의 경험, 런던에서는 공간과 움직임이 눈에 띄었습니다. 같은 호감이라는 말 밑에 놓인 행동을 보면 사람들이 K문화를 소비한다는 문장이 더 자세해집니다.

좋아하는 마음에도 가격표는 보입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소개한 부정 인식의 이유에는 지나친 상업화가 있습니다.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상품의 가격과 종류, 구매를 재촉하는 방식이 보입니다. 완성도와 무관한 주변 문제로만 밀어내면 오래 좋아해 온 사람의 피로를 놓칩니다.

음반의 두 가지 버전 중 하나를 고르는 가상의 구매자를 생각해 봅시다. 곡은 같지만 표지와 사진 구성이 다릅니다. 한 버전만 사면 다른 사진은 갖지 못하고, 두 버전을 사면 배송비와 보관 공간까지 늘어납니다. 상자를 놓을 선반이 이미 차 있으면 새 물건을 들이기 위해 다른 물건을 치워야 합니다. 선택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에 무엇을 갖고 싶은지, 같은 곡을 담은 물건 두 개를 둘 필요가 있는지가 함께 들어갑니다.

판매자가 다양하게 고를 기회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구성도 구매자에게는 놓치지 말라는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 디자인을 기다린 사람에게는 가장 반가운 물건이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지우면 비판은 배척으로, 구매는 무조건적인 지지로 바뀝니다. 저는 작품을 둘러싼 비용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팬의 관계를 오래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과 모든 상품을 사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는 충분히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짧게 만난 장면이 긴 작품으로 이어질 때

진흥원의 2026년 조사 설명은 짧은 SNS 영상에서 OTT로 관심이 이어지는 경로를 언급합니다. 배우의 목소리, 한 동작, 한 줄의 대화가 긴 소개보다 먼저 눈과 귀에 들어옵니다. 처음부터 한 회의 시간을 비우지 않아도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면을 기억하는 일과 인물의 시간을 읽는 일은 다릅니다. 원래 작품과 무관하게 만든 가상의 대화에서 누군가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 봅시다. 짧은 순간만 보면 안심시키는 말로 들립니다. 앞에서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이 놓이면 지친 답변으로 읽힙니다.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말을 삼켰다는 장면이 놓이면 또 달라집니다. 앞뒤가 돌아오는 순간 한 줄이 받는 무게가 바뀝니다.

본편으로 이동한 독자가 처음 좋아한 장면을 다르게 읽는 것은 관심이 줄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물에게 시간이 붙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짧은 영상이 문을 열고 본편이 안의 방을 보여 줍니다. 웹툰의 화면과 제작 과정이나 오늘의 K문화가 만들어지는 곳을 읽을 때에도 결과 뒤의 선택을 알면 처음 본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펜으로 그래픽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는 손
그래픽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는 손. 2021년 5월 14일, 사진 Piknuz.Piknuz · CC BY-SA4.0 · 크기 조정·WebP 변환·자르기 없음

다른 반응은 작품을 다시 읽게 합니다

저는 해외의 관심을 같은 환호로 바꾸기보다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불편했는지를 작품의 이름과 함께 남기는 편이 문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을 칭찬한 심사평과 책을 들고 줄을 선 독자, 춤을 따라 한 관객과 비용을 따진 팬은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 차이 덕분에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것도 더 많이 보입니다.

멀리 간 작품이 오래 남는 순간은 국가 이름을 외칠 때에만 생기지 않습니다. 다음 책을 기다리고, 번역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동작을 다시 해 보고, 좋아했던 작품에 아쉬웠던 대목을 말할 때에도 생깁니다. 서로 다른 독자가 같은 작품을 각자의 생활 속으로 가져가는 일. K문화의 해외 반응을 읽는 재미는 그 여러 개의 이야기에 있습니다.

THE PIECE TO KEEP

작품을 좋아한 이유와 불편했던 이유를 함께 남길 때 문화가 실제로 누구의 생활에 들어갔는지가 보입니다.

자료와 읽는 기준

해외한류실태조사 2026 발표 ↗2026-03-30한류의 변화와 해외 인식 ↗2026-03-30세계로 뻗어가는 웹툰 ↗2021-Spring미생: 일본 미디어예술제 기록 ↗한류 전시: V&A의 전시 소개 ↗2024-04-17

2014년 2월 23일, 런던 V&A 정문. 사진 Alistair Wettin.

Alistair Wettin · CC BY-SA 4.0 · 크기 조정·WebP 변환·자르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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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영어 문서의 최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