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 이름보다 먼저 책이 있었다

2024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발표에서 한강의 이름을 본 해외 독자는 이미 번역본으로 작가를 읽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날 처음 책을 찾아봤을 수도 있습니다. 노벨위원회의 공식 발표가 만든 큰 관심과 한 권의 책이 다른 언어의 서점에 놓이기까지의 시간은 같지 않습니다. 수상은 눈에 보이는 사건이지만, 원고를 읽고 옮기고 고친 사람들의 일은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진행됩니다.

한국 문학이 해외에 간다는 말을 물건의 이동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책을 포장해 보내는 것과 번역 출판은 다릅니다. 한국어로만 출판된 책을 외국의 독자가 자기 언어로 읽으려면 새로운 문장, 계약, 편집, 제작, 유통이 필요합니다. 작가의 이름 옆에 번역가와 출판사 이름을 함께 보는 순간, 한 권이 지나온 길도 조금씩 드러납니다.

이 길을 읽기 위해 세 사례를 보겠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어판과 데버러 스미스,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안톤 허,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영어판 『Mater 2-10』과 소라 김러셀·배영재입니다. 이 작품들을 한 종류의 한국적 정서로 묶기보다, 작품마다 다른 사람과 언어의 선택이 연결됐다는 사실에서 시작하려 합니다.

영어 제목 옆에 번역가가 있는 이유

부커상 공식 기록에서 『The Vegetarian』은 한강의 작품이자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표시되며,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책과 번역가의 기록을 보면 저자와 번역가를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역가의 이름은 원작의 소유권을 나눠 갖는다는 뜻이 아니라, 독자가 지금 읽는 언어의 문장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리는 정보입니다.

번역된 소설을 읽는 사람은 매번 한국어 원문과 대조하지 않습니다. 번역문 자체의 호흡을 따라 인물의 말과 서술을 만납니다. 문장의 길이를 어떻게 나눌지, 반복을 어디까지 남길지, 한 단락 안에서 누구의 시선을 따라갈지에 따라 읽기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줄거리가 같다고 해서 독서 경험까지 자동으로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문학 번역은 뜻을 확인하는 일과 문장으로 읽히게 하는 일을 함께 떠안습니다.

한국어의 높임말은 이 문제를 쉽게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요청이라도 말끝과 호칭에서 나이, 친밀함, 거리, 권력 관계가 드러납니다. 다른 언어에 같은 형식이 없으면 단어 하나를 갈아 끼우는 것으로 관계가 모두 전달되지 않습니다. 대사의 어조와 앞뒤 문맥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2024년 2월 18일 촬영된 서울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
2024년 2월 18일 촬영된 서울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Sean Young (@assanges) · CC BY 4.0 · 크기 조정·WebP 형식으로 변환

한 작품의 성공 다음에는 다른 작품이 온다

『Cursed Bunny』는 정보라의 작품을 안톤 허가 옮긴 영어판이며, 2022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수상과 최종 후보는 서로 다른 결과입니다. 공식 작품 기록은 단편집이라는 형식과 번역가도 함께 소개합니다. 한 작가의 장편을 통해 한국 문학을 처음 만났던 독자에게 다른 작가의 단편집이 전혀 다른 다음 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장편은 한 권의 긴 호흡을 따라가지만 단편집은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다시 출발합니다. 번역에서도 작품 전체를 일관되게 읽히게 할 문제와 각 편의 리듬을 살릴 문제가 겹칩니다. 독자는 한국 문학이라는 큰 이름을 기억할 수 있어도, 실제로는 이처럼 다른 형식과 문장을 읽습니다. 장편 한 권의 성공을 모든 작품의 공통 공식으로 삼으면 이런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해외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표지에 한국적인 이미지를 넣는 일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서점에서 한 권을 발견한 사람은 공포, 짧은 이야기, 긴 역사소설, 특정 작가의 문장 등 서로 다른 이유로 책을 집을 수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배경은 그 이유 중 하나이지만 독서의 이유를 모두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문학을 다른 K 콘텐츠의 부록처럼 다루기보다, 독자가 어떤 책을 왜 끝까지 읽는지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역가가 한 권을 만드는 과정

황석영의 『Mater 2-10』 영어판에는 소라 김러셀과 배영재, 영문 이름 Youngjae Josephine Bae가 공동 번역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2024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작품 기록을 보면 한 책의 번역에 한 사람만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달라집니다.

두 사람의 인터뷰는 장 분담, 초안 교환, 공동 수정을 설명합니다. 이를 넘어 일반적인 편집 상황을 하나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가상의 소설에서 공장 노동자가 직장 장면에서는 성으로, 가족 장면에서는 ‘아버지’로 불린다면,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두 호칭을 서로 대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호칭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이 자녀인지 동료인지가 달라지면 부르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편집 중에는 각 장면의 화자와 상대, 시간대를 표시하고, 수정한 문장이 이 관계를 바꾸지 않았는지 앞뒤 문장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대명사를 이름으로 풀어 쓴 경우에는 대상이 분명해지는 대신, 원래 감춰져 있던 정보가 너무 일찍 드러나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문장 하나의 명료함과 이야기가 정보를 내놓는 순서는 함께 움직입니다.

공동 번역에서 독자가 궁금해할 문제는 분량을 절반씩 나눴느냐보다 문장이 한 책으로 이어지느냐입니다. 이름과 용어를 다르게 쓰지 않는 일, 같은 인물의 말투가 장이 바뀌어도 읽히는 일, 앞에서 만든 표현이 뒤의 맥락과 충돌하지 않는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번역을 한 번의 변환 버튼으로 보는 시각과 거리를 만듭니다. 초안이 있다는 것과 책으로 읽을 문장이 준비됐다는 것은 다른 단계입니다. 다른 사람이 전체 흐름 안에서 읽으면 작성 중에는 지나쳤던 연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앞부분의 결정이 뒤쪽까지 이어집니다. 번역의 시간에는 처음 옮기는 시간뿐 아니라 이미 옮긴 문장을 다시 읽는 시간도 들어 있습니다.

완역 전에 출판사가 읽는 것

외국 출판사가 모든 한국어 작품을 원문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저작권 수출 지원에는 샘플 번역과 시놉시스 제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식 지원 구조는 책을 소개하는 자료에도 번역의 일이 필요함을 보여 줍니다. 한 권 전체를 옮기는 단계 이전에, 출판을 검토할 수 있게 만드는 자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샘플과 시놉시스의 역할은 다릅니다. 시놉시스는 작품의 큰 진행을 파악하게 하고, 샘플은 실제 문장의 읽기 경험을 보여 줍니다. 설명만으로는 문체를 만나기 어렵고, 일부 문장만으로는 전체 구성을 알기 어렵습니다. 두 종류의 자료를 함께 읽으면 관심 있는 작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용 책을 요약본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완성된 책을 만들지 판단하는 앞단의 작업입니다.

그다음에는 권리와 번역 계약이 이어집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출판 지원 안내는 해외 출판사가 저작권자·번역가와 계약한 뒤 지원을 신청하도록 명시합니다. 출판 지원 안내는 좋은 책을 발견하는 관심과 실제 출판을 추진하는 책임 사이에 놓인 절차를 보여 줍니다. 국가의 지원이 책의 문학적 가치를 자동으로 판정하거나 해외 독자의 선택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번역과 제작을 이어 갈 일을 나누고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장치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초안 이후에도 책은 만들어진다

번역 원고가 준비됐다고 곧바로 독자의 손에 같은 모습으로 도착하지는 않습니다. 편집과 교정, 글자와 줄의 배치, 표지와 책 소개, 서점에서 찾을 정보가 더해집니다. 번역 원고의 한 문장과 책의 한 페이지는 같은 단위가 아닙니다. 페이지가 바뀌는 곳에서 대화가 끊기고, 목차와 장 제목이 앞뒤를 안내하며, 독자는 그 제작된 형태로 작품을 읽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해당 지원 절차도 최종 교정본과 출간 도서 확인을 구분합니다. 원고의 준비와 책의 출판은 다른 시점입니다. 다만 모든 한국 문학 번역본이 이 지원을 받았거나 같은 경로를 거쳤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지원 제도의 공개 절차를 통해, 출판이라는 일이 단순한 파일 전송보다 많은 확인과 책임으로 구성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상이나 행사에 올라온 저자의 얼굴은 눈에 잘 들어옵니다. 반면 계약에 적힌 범위, 문장을 다듬는 편집자의 시간, 교정에서 확인하는 작은 차이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독자에게 돌아오는 결과는 책의 읽기 경험입니다. 줄거리를 알아도 읽고 싶어지는 문장이 있는가, 설명이 없어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이런 보이지 않는 제작 단계와 연결됩니다.

2006년 12월 14일 촬영된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입구.
2006년 12월 14일 촬영된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입구.ko:User:Hnc197 · CC BY-SA 2.5 · 크기 조정·WebP 형식으로 변환; 변경 이미지에도 원래 CC BY-SA 라이선스 적용

한 번의 수상보다 길게 이어질 독서

번역가의 일도 한 작품의 성공 뒤에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2008년 번역아카데미를 설립했습니다. 교육의 연혁과 교육 과정을 보면 언어 능력에 더해 작품을 읽고 번역을 다루는 훈련을 지속하는 기반이 있습니다. 교육을 마쳤다는 사실이 출판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긴 시간의 작업을 배우는 장소가 생겼다는 의미는 남습니다.

편집자의 눈에는 한국 문학의 해외 확장을 수상 횟수만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아쉽습니다. 상은 독자에게 입구를 열어 줄 수 있지만, 그 독자가 다음 작품을 찾는 이유는 직접 읽은 책에 남습니다. 한 작가와 번역가의 만남, 두 번역가의 공동 수정, 출판사가 먼저 읽는 샘플 같은 구체적인 일을 함께 봐야 그 입구 뒤의 긴 길이 보입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저주토끼』로, 혹은 『Mater 2-10』으로 옮겨 가는 독서는 한국을 한 이미지로 정리하는 대신 다른 작가의 선택을 차례로 만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K를 바라보는 글과 한국의 장소를 읽는 이야기도 그 배경을 넓혀 줍니다. 책을 덮은 뒤 남는 것은 나라의 성적표보다 문장과 질문입니다. 그 문장이 다른 언어에서도 오래 읽히도록 만든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억할 때, 한국 문학의 이동은 수상의 장면보다 훨씬 넓은 이야기가 됩니다.

THE PIECE TO KEEP

해외 독자가 만나는 책 뒤에는 작가와 번역가, 편집자와 출판사의 시간이 있습니다. 수상은 그 긴 길의 한 장면이며 다음 책을 찾게 하는 힘은 실제 읽기의 경험에 남습니다.

자료와 읽는 기준

2024 노벨문학상 발표 ↗2024-10-10채식주의자 영어판 기록 ↗저주토끼 영어판 기록 ↗철도원 삼대 영어판 기록 ↗황석영과 공동 번역가의 작업 인터뷰 ↗번역아카데미 소개 ↗번역아카데미 과정 ↗출판 지원 안내 ↗번역 샘플과 시놉시스 지원 ↗

2024년 12월 6일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 주간 기자회견의 한강.

John Sears · CC BY-SA 4.0 · 크기 조정·WebP 형식으로 변환; 변경 이미지에도 원래 CC BY-SA 라이선스 적용